대한민국 대표 항공사 대한항공의 기술거점,
(주)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항공사이자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항공사라고 손꼽히는 대한항공. 대한항공의 전신은 1962년에 설립된 대한항공공사 이었으나 1969년 한진 그룹이 인수하면서 민영 대한항공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이후에 대한항공은 한국의 경제성장, 역사와 함께 더불어 성장하면서 국민들에게 친숙한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항공사의 역할에는 여객수송과 화물운송이 있는데 21세기 급속한 산업발달과 고도화로 인해 그 역할의 이면에는 실로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할 기업은 대한민국 항공우주 산업의 미래가 계획 되어 지고 만들어지는 곳인 (주)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이다.
(주)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의 발전사
(주)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역사는 1970년대로 흘러간다. 1975년 강원도 철원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다. 같은 해엔 월남전이 막을 내리며 남베트남 정부가 항복을 선언하였고 인도차이나반도가 공산화되었다. 이렇듯 국내외 불안정한 정세와 북한과 공산정권으로부터 국가의 안보가 위협을 받자 ‘자주국방’이 최대의 국정 현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남부방위산업체를 시찰한 후, 기자회견을 열어‘우리나라도 80년도 중반까지는 최신예 전투기를 생산할 것’ 이라고 선언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항공기 생산이나 기술은 전무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선언은 국민들도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것 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당시 국내에서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던 공군과 대한항공을 놓고 고심한 끝에 대한항공의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을 만나서항공기 생산 사업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당시 한진 그룹 내부에서는 막대한 투자비용과 불확실한 수익성으로 반발이 많았지만 대통령의 부탁을 받은 조중훈 회장은 국가 안보라는 대의를 위하여 회사의 사운이 걸릴 정도의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항공기 생산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1975년 10월 대한항공은 정부의‘군용 항공기 정비, 조립, 생산 군수업체’로 지정되었고, 당시700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하여 부산 김해공항 인근에 항공기 생산 공장(현 대한항공 테크센터)를 건설하였다. 이듬해인 1976년에는 항공우주 사업본부를 발족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헬기 500MD 와 최초의 전투기 F-5 제공호
대한항공은 우선 헬기 조립생산에 착수했다. 항공기 생산이나 기술이 전무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기술이전으로 선진기술을 배워나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당시 북한은 수백 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헬기도입이 급선무였다. 미국의 휴즈사(社)와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항공기 조립과 기체 제작기술을 쌓아가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헬 500MD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헬기가 생산될 무렵에는 미국과 중국의 수교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미군은 대만에 있던 항공기 정비기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이는 대한항공이 항공기 제조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마침 대한항공으로서는 500MD를 생산했던 기술력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미군은 결국 대한항공을 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정비기지로 선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항공기 설계, 제작 및 정비, 개조 기술을 보유한 대한항공은 1982년에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최초의 전투기인 F-5 제공호를 생산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차세대 중형헬기생산, 차세대 전투기 도입사업과 국산 고등 훈련기 개발사업 등 방위산업분야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왔으며, 군용항공기의 정비 및 성능개량 사업을 추진하여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 최고의 방산 업체로 발돋움 하였다.
(주)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의 현주소
(주)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는 서울 서소문동에 위치한 서울 Headquarter Office 와 대전의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위치한 R&D센터, 그리고 부산 김해공항 인근의 테크센터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 사무소에서는 수도권에 위치한 각종 대외정부기관과의 대외업무 및 홍보, 전략기획업무, 사업 영업 활동 업무 등을 수행하며 컨트롤 타워로서 역할을 하고있다. 대전에 위치한 R&D 센터는 1971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항공우주 전문 연구기관으로, 항공기 및 우주비행체 전분야에 걸친 연구개발을 수행하며 우리나라 항공우주기술 개발을 선도해 오고 있다. 1991년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항공기인‘창공-91’ 개발을 시작으로 보잉·에어버스 등 해외 유수업체와 국제공동개발, 무인기 사업, KSLV-1 나로호 우주발사체 사업 등에 참여함으로써, 국내 우주개발의 꿈에도 기여하고 있다. 부산 김해공항 인근의 테크센터는 여의도공원 3배, 축구장 65배에 달하는 71만㎡의 대지면적을 자랑하며, 6900여종의 장비와 19,000종 이상의 치공구를 비롯해 항공기 생산, 정비, 개조에 필요한 각종 시설 및 장비를 완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자주국방 실현과 독자적인 국산항공기 개발생산을 목표로 항공기 조립·생산을 할 뿐만 아니라, 국군 및 미군 항공기 30여종 2,500여대의 정비 및 성능개량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극동지역 최대의 군용기 정비기지로 성장하였다. 또한 이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항공기 동체 부품시장을 개척하여 보잉, 에어버스 등 유수의 항공기 제작사들에게 항공기 구조물을 독자적으로 설계, 제작 및 공급하여 수익 창출은 물론이고 항공기 설계기술을 축적하여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주요사업
(주)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주요사업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민항기 국제 공동 개발 및 구조물 제작과 항공기 제작을 포함하고 있는 제작사업, 군용기 창정비 및 성능개량, 민항기 중정비 및 개조, 항공전자 및 보기류 정비를 포함하고 있는 정비사업, 무인항공기 개발과 인공위성 및 우주 발사체 개발, 그리고 항공 IT 시스템 개발을 포함하고 있는 연구 개발 분야이다. 그 중에서도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는 주력사업이 있는데 첫째, 복합재 항공기 설계 개발 사업(민항기 국제 공동 개발)이고 둘째,MRO(Management, Repair, Operation)분야의 고부가가치 영역인 항공전자 및 보기부품의 MRO 사업이다. 현재 차세대 여객기 B787, A350, A380 등을 제작하는 세계 유수의 항공기 제작사들과 함께 국제 공동개발에 참여하여 여러 가지 첨단 경량 고강도의 복합소재 구조물들을 개발 제작하고 있으며, 항공기의 수명연장, 성능개량 등 고부가가치 MRO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미래의 항공산업 선도를 위해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는 분야는 무인항공기 사업인데 동 사업은 정부과제로서 근접감시용 무인항공기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1단계로 이미 2007년에 KUS-7 근접감시 무인항공기(산불/해양감시용)를 성공리에 개발하였고, 2009년에는 운용반경이 80km 이고 체공시간이 8시간인 차세대 전술 무인항공기 KUS-9 개발하였다. 대한항공은 이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2008년부터 대형 전략급 무인항공기, 2010년부터 전술급 무인항공기를 개발 중에 있으며, 차기군단 무인기 개발 사업에도 참여하여 무인기 분야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국방력 강화에 일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핵심기술 개발에 성공한 틸트로터 무인기(TR-6X) 개발사업에 있어서도 2011년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공동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향후 틸트로터 기술 실용화를 통해 국내외 새로운 시장 창출과 선점으로 무인기 전문업체로서의 입지를 강화할 것이다. 1969년 대한항공은 보잉 720기를 들여와 우리나라 제트기 시대를 열었고, 1976년에는 바레인 노선을 열어 중동지역에서 외화벌이에 나섰던 노동자들에게 고향소식을 전하는 전령사 역할을 하였다. 1985년 서울올림픽 공식 항공사로 지정되었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공식 항공사로 지정되는 등 우리나라의 굵직한 이벤트에 항상 함께하며 성장하였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성장한 대한항공은 이제 급속히 변화하는 시류에 맞추어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변화지향적인 기업문화를 추구하며 세계최고 수준의 항공우주 종합기업을 목표로 오늘도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는 (주)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의 미래는 찬란히 빛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